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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도비할미 2025. 3. 19. 13:09

경기도(京畿道)는 대한민국의 중서부에 있는 도이다. 수도권의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를 둘러싸고 있고, 동쪽으로는 강원특별자치도, 서쪽으로 황해, 남쪽으로는 충청남도 및 충청북도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북도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와 경계를 이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광역지방자치단체로, 경기도의 도청 소재지는 수원시이고, 의정부시에 경기도청 북부청사가 설치되어 있다. 역사 고대 경기도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지와 하남시 미사동의 신석기시대 유적지, 여주 흔암리의 청동기시대 유적 등 주요한 선사 취락지들이 분포하고 있다. 기원전 2세기 경에는 진국(辰國)에 속하였으며 이후 삼한이 성립됐고 마한이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일대에 분포하였다.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10여 개가 경기도 지역에 포함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8년, 백제가 한강 유역에서 건국된 이래 백제의 중심지로 4세기 말까지 기능했다. 396년,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475년에는 한강 이남 지역도 상실하여 경기도 대부분이 고구려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551년에 백제 성왕은 신라와 연합하여 경기도 일대를 수복했으나 553년에 신라가 연합을 파기하고 경기도 일대를 차지하고 신주(新州)를 설치하여 다스렸다. 557년은 북한산주(北漢山州)로 개칭했다. 신라는 경기도를 차지하여 중국과의 해상 교통로를 확보했다. 신라 시기엔 한산주(漢山州)가 설치됐는데 757년에 한주(漢州)로 개칭됐다. 9세기 말에 신라가 혼란에 빠지자 경기도 각지엔 호족 세력이 난립했는데 898년에 궁예의 세력이 경기도 일대를 평정했다. 궁예의 후고구려는 송악(宋岳)에 도읍을 두기도 했다. 918년에 송악의 호족인 왕건이 궁예를 타도하고 고려를 건국했다. 고려시대 고려는 송악을 개경(開京)으로 개칭하고 도읍으로 삼았다. 고려 성종 14년(995년)에 지방행정구역을 십도(十道)로 개편할 때, 현재의 경기도는 관내도(關內道)와 중원도(中原道) 일부가 관할하는 지역이었다. 개경 주변에 적현(赤縣)(경현京縣이라고도 함) 6개와 기현(畿縣) 7개를 설치하였고, 1018년에 현종이 적현과 기현을 묶어서 왕도의 외곽지역을 정식으로 '경기(京畿)'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당시 경기는 오늘날 경기도의 북부 일부(파주시의 북부, 연천군의 서부)만 포함하였고, 이를 뺀 경기도의 대부분 지역은 양광도에 속하였다. 1067년에 서울의 강북 지역에 남경(南京)이 설치되었다. 1069년에 양광도(楊廣)·교주도(交州)·서해도(西海道)로부터 39현을 포함하면서 원래 경기 13현과 합하여 총 52현을 관할하는 규모로 확대되었으나, 얼마 후 경기의 영역은 현종 때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조선 개국 2년 전인 1390년, 총 44현을 통할해 1069년에 확대되었던 영역과 비슷한 규모로 재편되었고 처음으로 도 단위의 지방조직이 되었다. 당시의 경기는 좌도와 우도로 나뉘어 통치되었다. 조선 시대 경기도 (조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경기감영도 조선 시대에는 태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뒤, 경기의 영역을 재조정하였다. 1402년(조선 태종 2년)에는 경기좌우도를 경기좌우도성(京畿左右道省)으로 명명했고 1413년(조선 태종 13년)에는 지금과 비슷한 경기도의 경계선이 확립되었다. 1414년(조선 태종 14년) 1월 18일에 경기좌도(京畿左道), 경기우도(京畿右道)가 경기도로 통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안(遂安), 곡주(谷州), 연안(延安) 등 옛 경기도 북서부 지역이 풍해도(豊海道, 황해도(黃海道))에 편입되었으며 양주(楊州), 광주(廣州), 수원(水原), 여주(驪州), 안성(安城)을 비롯한 일부 옛 충청도 북부 지역이 경기도에 편입되었다. 세종 시기에는 경기도 철원(鐵原), 안협(安峽)이 강원도에 지우고 충청도 죽산(竹山)이 경기도에 이관되었다. 1895년에 종래의 행정구역을 개편한 23부제가 실시되었는데 이때 경기도는 대체로 한성부, 인천부, 충주부, 공주부, 개성부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다시 1896년에 13개의 도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으며 경기도의 수부(首府)는 수원에 두었다.[6] 일제강점기 경기도 (일제강점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제강점기 경기도청 1910년 10월 1일 기존의 한성부가 경기도로 편입되면서 경성부로 개칭되고 여기에 도청을 경성부 광화문 앞에 두었다.[7]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부평군, 양지군, 죽산군, 음죽군, 안산군, 과천군, 교하군, 적성군, 풍덕군, 마전군, 삭녕군, 영평군, 양천군, 남양군, 교동군, 통진군, 평택군이 폐지되어 다른 군에 흡수되거나 통합되고 신설된 지역은 부천군이다. 1930년 개성군 송도면이 개성부로 승격되었고, 잔여 지역이 개풍군으로 개칭되었다. 1936년 4월 1일 고양군 용강면, 연희면, 한지면 일원과 숭인면 일부, 은평면 일부, 시흥군 영등포읍 일원, 북면 일부, 동면 일부가 경성부로 편입되었다. 1938년 경기도 진위군의 이름을 평택군으로 바꾸었다. 1940년 부천군 문학면 등이 인천부로 편입되었다. 군정기 1945년 9월 2일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경기도의 대부분은 미군정 관할이 되었으나 연천군 대부분과 포천군, 가평군의 일부가 소련군정 관할이 되었다. 1945년 11월 4일 연천군의 미군정 관할 지역이 파주군에 편입되었다.[8] 1946년 9월 28일 경기도 서울시가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되어 경기도 관할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9] 1945년 11월 4일 황해도의 38선 이남 지역이 경기도에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황해도 옹진군은 경기도 옹진군이 되었고, 벽성군 해남면 · 동강면 · 송림면과 장연군 백령면 등 38선 이남의 인근 4개면이 옹진군에 편입되었다.